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한 첫기억을 들었다.
목욕을 하기 위해 들어 앉은 고무목욕통 안에서 문득 처음과 끝이 있는 그래프가 그려지더라는...
그 그래프에서 자기가 살아 있는 지점에 점을 찍으니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 가깝게 와 닿았고, 그 죽음 앞에 마주 서니 너무 무섭고 두려워 그만 울고 말았다는 친구.... 그의 나이 일곱살 때의 일이란다.
특별히 나는 죽음에 대한 성장통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짧막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쯤 텅빈 교실안에서 창 밖을 보며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라는 정도. 그것도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구차함을 비관하는 것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무섭고 두려워 그만 울고 말았다는 친구의 말에 문득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전쟁이라는 공포.
그 당시의 '반공교육'이 날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총을 든 군인들이 집 안에 들이 닥쳐 때리고, 부수고, 총을 쏘는 공포......그리고 거대한 탱크들.
그 당시 나에게 전쟁의 공포는 현실이었다.
컴컴한 밤에 전쟁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오를때면 그 공포에 질식해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전쟁에 대한 공포는 죽음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삶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과 고민들 속에서 죽음에 대한 나만의 정리가 끝난 지금은 전쟁 자체에 대한 내 안의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전쟁영화나 전쟁을 소재로 한 책들은 전혀 보질 못한다.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자리에 '타인의 고통'이 들어와 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이들의 고단함, 비굴함, 처절함, 고통스러움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오지랖병.
그러니 전쟁의 공포와 타인의 고통이 그대로 묻어 날 것 같은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는 고통이고,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이 책은 그렇게 오래도록 책장에 꽂혀 있었으면서도 그동안 한번도 나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할 책으로 이 책이 정해져 결국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읽기 시작 했다.
.
.
.
다행이다.
작가의 말처럼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의 기록이어서 그런지 읽는내내 힘들지 않았다.
처절하지 않고, 감정이입을 강요하지 않는 글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강한 힘을 가진 책이다.
읽는 동안 지금의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1년 반 만에 한국사회가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갔다"라는 리영희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사실인 것 같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더 위험하다."
국가 권력이 난폭해지고 있다.
"거지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타인의 고통'은 영원히 타인의 것이 아니다.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한 첫기억을 들었다.
목욕을 하기 위해 들어 앉은 고무목욕통 안에서 문득 처음과 끝이 있는 그래프가 그려지더라는...
그 그래프에서 자기가 살아 있는 지점에 점을 찍으니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 가깝게 와 닿았고, 그 죽음 앞에 마주 서니 너무 무섭고 두려워 그만 울고 말았다는 친구.... 그의 나이 일곱살 때의 일이란다.
특별히 나는 죽음에 대한 성장통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짧막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쯤 텅빈 교실안에서 창 밖을 보며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라는 정도. 그것도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구차함을 비관하는 것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무섭고 두려워 그만 울고 말았다는 친구의 말에 문득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전쟁이라는 공포.
그 당시의 '반공교육'이 날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총을 든 군인들이 집 안에 들이 닥쳐 때리고, 부수고, 총을 쏘는 공포......그리고 거대한 탱크들.
그 당시 나에게 전쟁의 공포는 현실이었다.
컴컴한 밤에 전쟁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오를때면 그 공포에 질식해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전쟁에 대한 공포는 죽음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삶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과 고민들 속에서 죽음에 대한 나만의 정리가 끝난 지금은 전쟁 자체에 대한 내 안의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전쟁영화나 전쟁을 소재로 한 책들은 전혀 보질 못한다.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자리에 '타인의 고통'이 들어와 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이들의 고단함, 비굴함, 처절함, 고통스러움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오지랖병.
그러니 전쟁의 공포와 타인의 고통이 그대로 묻어 날 것 같은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는 고통이고,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이 책은 그렇게 오래도록 책장에 꽂혀 있었으면서도 그동안 한번도 나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할 책으로 이 책이 정해져 결국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읽기 시작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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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이다.
작가의 말처럼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의 기록이어서 그런지 읽는내내 힘들지 않았다.
처절하지 않고, 감정이입을 강요하지 않는 글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강한 힘을 가진 책이다.
읽는 동안 지금의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1년 반 만에 한국사회가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갔다"라는 리영희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사실인 것 같다.
![]() | 이것이 인간인가 - ![]()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돌베개 |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더 위험하다."
국가 권력이 난폭해지고 있다.
"거지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타인의 고통'은 영원히 타인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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